2003.8.17 일요일
여독으로 아직도 몸이 무거웠지만, 이러다간 규칙적인 리듬감이 깨질거 같아서,
산에 가기위한 차비를 일부러 더 바쁘게 서두른다.
아침까지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것도, 편안한 휴식끝에 슬슬 게으름이 고개를 쳐들었기 때문이었다.
싫것 떠나있다오고서도, 아직도 어다론가 떠난다는 사실은
특히, 산으로 간다는 사실은 새로운 들뜸으로 다가온다.
겨우 한주를 쉬었을뿐인데, 남편과 둘만의 산행이 무척 오래된것처럼 느껴진다.
5일동안 생 이산가족(^^)이 되었던 탓이리라.
오전 9시 30분쯤 집을 나서니,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이젠 비 맞으면서까지 등산을 강행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서,
잠시 망설이다가,그렇다고 기왕 나선길을 접을수는 더욱 없는 일.
일요일에 집에 갇혀있는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지는일은 없기 때문에...
오늘의 목적지는 남덕유산.해발 1507미터의 만만치 않은 도전과제이다.
시원하게 뻗은 대진 고속도로 덕으로 한시간 30분 거리의 남덕유산을 목적지로 정할수 있었다.
가는 내내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는 비 때문에 산중턱까지 내려온 하얀 구름떼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다행히 비가 그치고, 11시 30분경부터 영각사 매표소에서 등산을 시작한다.
길은 그리 험해 보이지 않고, 나무들이 머리채를 흔들며 쏴아~ 하는 바람소리가 가을바람을 연상케 한다.
산에서 맞는 가을느낌에 가슴속이 시려온다.
한걸음 한걸음 올라갈수록 오락가락하는 비와 고도 때문에 환상같이 흰 안개 커튼이 드리워 진다.
초록나무들사이로 뽀얗게 스며드는 안개가 환상의 나라에라도 온듯 느껴진다.
나는 평소 페이스대로 가고 있는것 같은데, 오늘따라 남편은 서둘러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 바로 앞에 산을 오르는 나이 지긋하신 한무리의 단체가 있었는데,
아무리 평소 진행속도가 느렸더라도 여기서 까지 추월당하기 싫은 눈치이다.
몇번 빨리오라고 재촉하더니, 내가 더이상의 속도를 내지못하자, 휭허니 앞장서 가 버려,
어느순간 보이지도 않게 되어버렸다.
처음엔 그 마음을 이해하며 올라갔지만, 아무리 올라가도 보이질 않으니, 나중엔 화딱지가 났다.
아무도 없는 교교한 산속을 혼자 오르는건 첨이라 무섭기도 하고,무매너인 남편에 대한 섭섭함으로
씩씩거리며 겨우 안부에 오르니,남편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서 부터 본격적인 험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개에 휩싸여 밑이 어딘지도 모를 절벽끝을 아슬 아슬 지나고, 등이 간질거릴정도로 직각의 철계단을 오르고, 암벽 날등을 네발로 기면서 올라도
바로 옆의 봉우리조차 보이지 않는 안개 때문에 정상이 어딘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촉촉히 젖은 바위틈에 이쁘게 이슬이 맺힌 들꽃을 지나니, 어슴푸레하게 이정표가 보이고,
드디어, 바위에 새긴 이름짜가 눈에 들어온다.남덕유산 1507미터!!
힘껏 야호를 외치고,잠시 숨을 돌리며 준비해간 포도로 내려갈 에너지를 보충하다보니,
아마도 종주를 하는 사람인듯,완전군장을 한 청년이
지친 모습으로 올라왔다.
자유롭게 보이기도 하고 안쓰럽게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저렁게 종주산행을 할수 있을까?
체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용기를 내는것도 큰 몫을 할거 같다.
거기부터 향적봉까지는 14키로가 넘는 거리였다.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랐던 향적봉이었기에
내발(혹은 네발 ^^)로 오른 남덕유산 등반은 아주 보람찼던 산행이었다.
사족:
여행기를 올리려다 보니, 산행기를 이제서야 올리게 되는군요 ^^
주차장까지 총 8키로의 산행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니,4시 30분이 되었다.
지치고 포도로만 때워서 허기진 배를 안고,20키로 떨어진 안의로 향한다.
평소에 예니가 말하던 안의 순대를 먹어보기로 했다.
이제 비는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다.
비가 없는 시간에 산행을 해서 참 다행이었다.
안의면 장터안에 있는 순대집은 아주 시골스럽고 허름했지만
입맛이 까다로운 남편도 게눈감추듯 먹어치울정도로
맛은 굿! 짱! 이었다. ^^* 산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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